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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호흡

「티베트 꿈과 잠 명상」 소개

by 마하연 2023. 1. 24.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며 보낸다. 깨어 있을 때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덕망이 높은 사람이든 도덕관념이 희박한 사람이든, 살인자든 성인이든, 수도자이든 쾌락을 탐닉하는 난봉꾼이든 하루는 동일하게 끝이 난다. 두 눈을 감고 깊은 어둠으로 용해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져도 일말의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고서 말이다. 그렇게 잠이 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이미지들이 일어나면서 '나'의 느낌도 같이 떠오른다. 그 어떤 한계도 없는 꿈의 세계에서 '나'의 느낌이 다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밤 경험의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고, '나'의 감각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이러한 가장 심오한 신비 속으로 빠져들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진짜'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우리는 계속 잠들어 있으며 꿈꾸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르침에 따르자면 우리는 깨어 있는 낮이나 잠이 드는 밤 모두를 꿈꾸는 듯한 상태에서 착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깨어날 수도 있다.

꿈과 잠 요가를 수행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법맥을 따르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아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이들이 수행을 해왔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회의적일 때도 있었고 장애를 마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이 수행을 통해 얻을 이점들 또한 누릴 수 있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라마들과 요기들에게 꿈과 잠 요가는 아주 중요한 수행이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꿈과 잠 요가의 역사를 되새기면 또한 자신의 삶을 가르침에 헌신하여 이 수행을 널리 알리신 역대 스승들을 생각하면 이 전통에 대한 깊은 신뢰와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넘쳐흐른다.

어떤 티베트 스승들은 예비수행을 거치지 않은, 혹은 수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서양인들을 가르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이 가르침은 오랫동안 비밀로 지켜졌다. 그 이유는 먼저 가르침 자체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다. 또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준비가 덜 된 수행자들이 그 본래 뜻을 변질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꿈과 잠 요가는 절대 공공연하게 가르쳐지지 않았ㅇ며 가볍게 주어지는 가르침도 아니었다. 이 가르침은 오직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된 개별 수행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이다.

수행의 효과, 가치 모두 예전과 다름없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바뀌었기에 나는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되었다. 나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효율성, 단순성을 더함으로써 전통도 지키면서 많은 이들이 이 가르침의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고 있다. 하지만 가르침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 이렇게 함으로써 가르침을 보호하고 우리 자신의 수행을 더 개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이러한 가르침들을 자격 있는 스승에게 직접 전수받기를 바란다. 수행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법맥과의 강한 연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스승에게 구두 전승을 받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수행 중 장애를 마주치기 쉬운데, 이러한 장애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들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끔 우리를 돕는 것이 바로 경험 있는 스승이다. 위의 사실들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므로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주 귀중하다. 우리는 온전한 몸과 마음, 그리고 완전무결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거나 영적 여정에 따른 자유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영적 여정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남을 도우려는 우리의 염원을 위해서도 수행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삶이 얼마나 짧은지, 죽음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잘 알고 있다. 이 모두를 알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은 바쁜 일정으로 돌아가기에 수행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매일 한두 시간 정도를 명상에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나머지 스물두 시간은 육도윤회와 파도에 떠밀려 산란한 마음으로 지내게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잠을 자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으므로 인생의 3분의 1을 수행의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삶의 그 어떤 순간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융통성이 생겨서 습관적인 집착이나 산만함에 지배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안정적이고 생생한 현존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더 능숙하게 긍정적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반응은 우리 자신의 영적 여정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굉장히 이롭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깨어 있는 삶뿐만 아니라 꿈에서도 완전한 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인식의 연속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꿈 현상에 대해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면 꿈속에서 다양한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 또한 이 능력이 완성되면 꿈꿀 때나 깨어 있을 때 모두 더 큰 안락함, 편안함, 명료함, 감사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후의 중음, 즉 바르도에서 해방을 성취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가르침은 매일매일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매일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이번 생에도 중요하며 유용하다. 그러나 꿈과 잠 요가의 궁극적 목표는 해탈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라. 이 책은 이러한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행 지침서인 동시에 뵌 불교의 꿈과 잠 요가를 위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뵌 불교는 환영 같은 일상의 삶에서 해방되기 위해 꿈을, 무지로부터 깨어나기 위해 잠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에 알맞게 수행하길 원한다면 자격 있는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도록 하라. 그런 후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3장에 설명되어 있는 고요함에 머무르는 수행, 즉 시녜 수행을 하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예비수행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그것이 자연스럽게 삶과 통합되도록 하라. 그러고 나서 주요 수행을 시작하라.

급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육도윤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삶을 반복하였다. 단순히 영성에 관한 어떤 책을 읽고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꿈과 잠 요가를 철저하게 수해한다면 우리는 깨달음 그 자체인 마음의 본성으로 깨어나게 될 것이다.

만일 잠 속에서 깨어 있지 못한다면 그리고 매일 밤 우리 자신을 상실한다면 과연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깨어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만일 우리가 꿈에서 마음의 투영에 불과한 그것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반응한다면 죽음 후의 상태에서도 자유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꿈속에서의 경험을 잘 살펴보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알 수 있다. 또 잠의 경험을 잘 살펴보면 스스로 진정 깨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르침의 전수

영적 지도를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귀로 듣기, 깊이 사유하기, 수행에 적용하기'이다. 이는 귀로 들은 것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사유하여 그 의미가 무엇인지 꿰뚫고 그것을 수행에 적용해 보라는 뜻이다. 배움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배움의 과정은 계속되어 끊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인 이해에서 멈추게 되면 그것은 수행에 걸림돌이 된다.

가르침을 귀로 듣고 전수받는 과정에서 훌륭한 자질을 지닌 학생은 접착제가 칠해진 벽과 같다. 그 벽에 풀잎을 던진다면 풀잎이 벽에 달라붙는다. 반면 자질이 없는 학생은 메마른 벽과 같다. 그 벽에 무엇을 던지든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전수된 가르침은 버려지거나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르침을 간직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해되어 꿰뚫어지지 못한 가르침은 마른 벽에 던져진 풀잎과 같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잊힌다.

가르침의 핵심을 꿰뚫는 일은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것과 같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것이 명확해진다. 가르침의 여러 조각들이 딱 맞아떨어져 분명히 이해될 때 일어나는 '아하' 경험이다. 이는 단순한 개념적 이해와는 구분된다. 가르침을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한 앎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방에 노란색과 빨간색 방석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지적 이해를 얻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방이 어두울 때 방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어떤 방석이 어떤 색깔인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르침의 핵심을 꿰뚫는 것은 불을 켜는 것과 같고, 우리는 그 즉시 노란색과 빨간색 방석을 분간할 수 있다. 이 경우 가르침은 더 이상 앵무새 같은 반복이 아닌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

'수행에 적용한다'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이해되어온 것, 즉 받아들이고, 숙고하고, 의미 있게 만든 것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소금을 맛보는 것과 유사하다. 소금은 그것의 화학적 구조나 기타 정보들로써 논해질 수도 있겠지만, 소금의 직접경험은 그것을 맛볼 때 일어난다. 이 경험은 지적으로 파악할 수도, 언어로 전달될 수도 없다. 만일 우리가 한 번도 소금을 맛본 적 없는 사람에게 소금을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금을 맛본 사람과 소금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르침은 이 같은 것이며 배움의 과정도 이와 동일하다. 먼저 귀로 듣거나 읽고 그것에 대해 사고해 본 후 의미를 꿰뚫어 본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경험한다.

티베트에서는 새로운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그것을 햇볕에 말리고 버터로 문질러준다. 초보 수행자는 이러한 새 가죽과 같다. 좁은 관점과 융통성 없는 개념 때문에 딱딱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수행 중 발라줘야 하는 버터이며 햇빛은 직접경험이다. 가르침과 직접경험은 수행자를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변화시켜준다.

알고 보면 버터 자체도 가죽 주머니 안에 보관된다. 버터를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가죽 주머니 안에 두면 가죽이 나무토막같이 딱딱해져서 아무리 버터로 문질러주어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수년간 공부한 가르침을 수행 경험 없이 지적으로만 방대하게 이해한 사람은 딱딱한 가죽과 같다. 가르침은 무지와 조건화로 인해 딱딱해진 가죽을 부드럽게 한다. 그러나 가르침이 오랜 기간 지성 안에만 보관된 채로 수행자에게 문질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직접경험의 따뜻한 햇빛, 즉 수행이 겸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지적 이해에 갇혀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이가 될 것이다. 새로운 가르침은 그를 부드럽게 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는 가르침의 핵심을 꿰뚫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르침을 개념적 이해로만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개념적 이해는 지혜를 막는 방해물이 될 것이다. 가르침은 수집해야 할 개념이 아니라 따라가야 할 길이다.

「티베트 꿈과 잠 명상」/ 1998 정신세계사

 

지은이 텐진 왕갈 린포체

티베트 뵌 전통의 라마이자 뵌 전통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기관인 리그밍차 인스티튜트의 설립자다.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 암리차르로 피난해온 불교 라마 아버지와 뵌교 전승자 어머니 사이에서 1961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티베트 사원의 전통 방식에 따라 교육받았고 1986년에는 티베트 전통에서 가장 높은 학위인 게셰 칭호를 받았다. 현재 전 세계 티베트 전통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옮긴이 홍기령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동대학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여성주의 정신분석학을 주제통합과정에서 '21세기 행복한 사회인'을 강의했다. 책의 저자 텐진 왕갈 린포체에게 꿈 작업을 지도 받았고 꿈을 통한 치유에 깊은 관심이 있다. 현재 텐진 왕갈 린포체의 연구 단체인 리그밍차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으며 예수회 센터에서 꿈과 영적 치유를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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