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삶의 진실을 성찰하라
Point 2 보리심을 개발하라
절대적 보리심
상대적 보리심
명상의 중간
8. 세 가지 대상과 세 가지 독을 세 가지 독의 씨앗으로 변화시켜라
9. 모든 활동에 경구를 사용해 수행하라
10. 자기 자신과 주고받는 과정을 시작하라
- 2장을 마치며 -
명상의 중간
통렌 수행을 마친 후에는 다시 사마타(고요) 명상으로 돌아오고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무른다. 수행이 끝나고 일상생활로 되돌아간 때를 '명상의 중간'이라고 부른다. 일상의 일들을 명상 수행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명상에서 했던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그리고 통렌 수행을 할 때 남을 위하는 태도를 일상에서도 계속 유지한다. 어떤 이들은 알아차림을 자의식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나는 이 상황, 사람 혹은 상호 작용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지?"라고 질문하고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자의식은 단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형태의 자기 집착일 뿐이다. 여전히 자신에게 가장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로종 수행에서는 명상의 중간에 다른 사람과 상황에 대한 자신의 반응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욕구와 기대의 맥락에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명상과 기도에 통합하고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때 우리의 태도는 깊이 변화된다.
명상의 중간에는 이를 '깊은 바람(願)' 즉 '열망의 행위'라고 한다. 서양인에게는 이 개념이 낯설지만 매우 강력한 심리학적 정신적 기법인 열망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깊은 바람을 '기도'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다. 불자들은 어떤 대상에게 기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하는 기도의 힘은 생각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긍정적 의도와 수행을 쌓음으로써 일어난다. 그 정신 에너지를 열망의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우리가 미래에 실현하고 싶은 것을 더 가까이 끌어온다.
명상의 중간에 활동할 때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경구가 있다.
- 세 가지 대상과 세 가지 독을 세 가지 독의 씨앗으로 변화시켜라
- 모든 활동에 경구를 사용해 수행하라
- 자기 자신과 주고받는 과정을 시작하라
세 가지 대상과 세 가지 독을 세 가지 독의 씨앗으로 변화시켜라
대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우리와 잘 지내는 사람,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 별 관심이 없는 사람. 그중 우리와 잘 지내는 사람을 사랑하고 매우 집착하며 어떤 피해도 주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몹시 싫어하는 사람은 그저 나무라고 비난하고 언제든 욕한다. 한편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애정도 미움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무관심도 하나의 감정이므로 그들을 완전히 중립적이고 무해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어서 언제든 집착하거나 혐오할 수 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깊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욕망의 대상이고 혐오하는 사람은 분노의 대상이며 알지 못하고 관심 없는 사람은 어리석음의 대상이다. 이 경구에서 말하는 '세 가지 대상'이란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 가지 독'이란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말한다. 또 '세 가지 덕'은 갈망하지 않음, 분노하지 않음, 어리석지 않음을 뜻한다.
이 경구는 세 가지 대상과 독을 세 가지 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덕을 악함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지 않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대상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부정적 경향을 오히려 덕성을 기르는 토양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세 가지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으면 친구나 적 혹은 모르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다양한 요인과 환경, 조건 속에서 어떤 사람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적이나 낯선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매우 깊이 바라보는 관점이다. 본래 친구이거나 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과의 관계는 순식간에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미운 적이 될 수 있고, 적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장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이 친구나 적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관계가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자애심과 자비심을 더 수월하게 개발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적'으로 등장할 때 특정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런 일시적 인식을 넘어설 수 있고 모든 관계가 의존적으로 생겨나는 걸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꿈과 같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면 다른 사람들을 친구 혹은 적이라는 고정된 실체로 여기고 집착하는 습성에 저항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외로움, 낙담, 우울, 절망, 좌절, 상상하기 어려운 괴로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 꿈처럼 보지 못하면 포괄적 관점을 잃게 된다. 이렇게 절대적 보리심과 상대적 보리심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참으로 남을 동정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낯선 사람부터 시작해서 적이나 대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점점 범위를 넓히면서 사랑과 자비심을 확장하려 노력한다. 샨티데바는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친구나 적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걸 보더라도 모든 것은 조건에 의존해 발생하는 걸 상기하고 마음의 안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만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게 아니다. 남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수행을 방해하려 작정한 것 같을 적에도 성장한다. 다시 말해 악이 없는 데서만 덕성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악함을 다루어서 덕성을 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명상이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매일 집착과 분노와 무관심을 다루는 일이 어려울 수 있지만 명상할 때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다루려 노력하면 덕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명상의 중간에 상상으로 수련할 수 있다. 강한 욕망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과거에 어떤 사람에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지만 결국 불쾌함과 괴로움을 겪었던 일을 떠올린다.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온갖 문제를 상기하고 다른 중생도 과도한 집착에 의해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의 괴로움을 모두 흡수해서 그들을 비통합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상상한다. 이어서 마음속으로 "나와 모든 중생이 과도한 욕망에 따르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집착하지 않음의 덕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소망한다. 이 수련의 열쇠는 단지 남의 고통을 기꺼이 떠맡는 것만이 아니다. 열망의 힘으로 남의 고통을 이용해서 우리의 독을 그에 상응하는 덕의 씨앗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전체 수행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그 의미와 효과는 실제로 매우 심오하다.
모든 활동에 경구를 사용해 수행하라
간결한 격언은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단지 로종 수행서에 있는 경구뿐만 아니라 될수록 많은 경구를 기억해 두면 좋다. 잠괸 꽁튈은 아래 글에서 간결한 격언으로 유명했던 샨티데바의 마을 인용한다.
- 다른 사람들의 악이 내 안에서 자라게 하시고 나의 덕성이 그들 안에서 자라게 하소서.
단순히 경구에 익숙해지기 위해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관점을 바꾸고자 경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말과 글은 내용에 따라 긍정적 영향이나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진정으로 경구를 사유하고 그 깊고 섬세한 의미를 이해하면 보살의 태도를 견지하고 부정적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로종의 가르침에서는 경구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한다. 경구를 떠올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우리가 습성에 이끌려 반응하는 걸 피할 수 있다.
이 경구는 본질적으로 '함께 기뻐함'의 개념을 가리킨다. 우리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하기 쉽다. 대중매체는 세계 어디서든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뉴스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반면 좋은 사건은 많이 일어나도 보도하지 않는다. 좋은 뉴스는 별다른 뉴스가 못 되고 나쁜 뉴스는 더 인기 있다. 아마도 나쁜 뉴스를 들으면 자신의 인생에 넘치는 나쁜 뉴스가 상대적으로 더 좋은 뉴스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우리는 자제하지 못한다. 즉 어떤 이가 갑자기 큰 재산을 얻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승진했다는 좋은 소식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자신보다 나은 것도 없는 사람이 행운을 얻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데 부정적인 피드백인 경우가 많다. 로종 수련은 그런 패배주의적 습성을 고칠 수 있게 도와준다. 틀에 박힌 행위나 말하는 방식을 바꾸어도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과 주고받는 과정을 시작하라
자기 집착은 유아론적 상태이다. 유아론이란 자신의 경험만이 존재하고 자신의 외부에는 참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는 안심, 편안함, 휴식이 없다. 따라서 끊임없이 "이런 유아론적 자기도취 상태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원해야 한다. 자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스스로 만든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에 갇히게 된다. 그런 자아에 갇힌 세상에서는 자신이 인식하는 것이 이론의 여지없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현실을 무조건 믿는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확신으로 번뇌와 망상의 마음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 유아론을 해체하는 유일한 길은 다르마락시타가 조언하듯이 자신을 남과 바꾸는 것이다.
- 내가 이기적 상태에 빠져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의 행복을 중생에게 줄 것이다. 마찬가지고 동료가 배은망덕하다 해도 나는 만족할 것이다. 나의 변덕스러움에 대한 응보라 여기고.
자신을 남과 바꾸는 수행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고통 대신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고려하는 것이 자기 집착에서 마음을 돌리는 방법이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걱정하는 대신 남의 감정과 느낌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이 파괴적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거식증 환자는 자신의 현실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탓에 과체중이라는 왜곡된 두려움이 커져 실제로 생명을 위협할 지경이 된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그것이 바로 윤회계의 특성이다. 진보하려면 그런 습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물론 남이 겪는 일을 정말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상상하려 노력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보다 더 고통스럽고 비참할 수 있음을 알게 되므로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샨티데바는 이렇게 말한다.
- 속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나'와 '남'을 바꾸기라는 신비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 과중한 책임감에 짓눌리거나 다른 사람의 심한 괴로움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불행을 놓아버리는 데 심리적 저항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먼저 자신에게 자비심을 보내서 주고받기 과정에 시동을 걸어 참된 자기 수용을 일으키고 무능감과 자기혐오 같은 감정을 없애버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을 향해 주고받기 수행을 시작한다. 번뇌나 자기 집착 같은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을 내쉬고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긍정적 감정을 개발하는 능력을 들이쉰다.
까담파 전통에서는 무생물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개발하라고 권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과 바꾸는 노력을 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과 사물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살의 행위에 대한 상당히 많은 문헌에서 이 닦기, 설거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문과 창문 닫기, 침구 정리하기, 옷 정리법을 말한다. 샨티데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한다.
- 식사할 때는 소리 내며 게걸스럽게 먹거나 입을 크게 벌리거나 가득 채우고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다리를 쭉 뻗고 앉거나 무례하게 손을 비비면 안 됩니다.
옷은 바닥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단정히 개어 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생명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소중히 요리한다. 요리할 때 재료를 함부로 섞지 않고 너무 익히거나 덜 익혀도 안 되며 적절히 익힌다. 까담파에서는 이를 '부드럽게 요리하기'라고 말한다. 양파를 대충 자르지 말고 조심스럽게 자른다. 그 밖에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지녀야 한다. 가재도구를 늘어놓거나 낭비하지 않고 잘 정돈한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보살핌과 사랑과 알아차림과 현존의 태도를 적절히 유지 보수한다. 이 모든 것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과 성실함을 수련하는 길이다. 생명이 없는 사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살아 있는 존재를 다룰 때도 부주의한 태도가 드러날 것이다.
자신을 남과 바꾸는 수행은 자기 확신을 북돋고 자신을 더 참되고 진정한 존재로 확립하는 길이다. 우리가 더 진정한 존재가 될수록 자신의 노력에 확신을 갖게 된다. 주고받기 수행은 많은 서양 주석가의 주장처럼 자긍심을 훼손하기는커녕 실제로 자기 확신을 북돋운다. 어떤 이들은 불교철학이 자긍심을 깎아내린다고 비난하고 개인의 성장을 돕는 데 명상보다 심리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단지 내담자의 부모를 탓하는 것처럼 자기 확신이 부족한 정신 역학적 원인을 분석할 뿐이다. 실제로 '확신'을 이루는 게 정말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하는 치료법은 자신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관점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서 자신감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기주장은 근본적으로 자아 존중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삶에서 참으로 행복을 얻는 방법은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서 사랑받는 것이다. 윤회계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얼마나 허약하고 상호 의존적인지 인식하지 못하면 참자신감을 얻을 수 없다. 그때 행복해지려는 소망은 애초에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2장을 마치며
명상으로 마음에 새로운 습관을 들이고 점진적으로 부정적 경향을 극복하는 길
절대적 보리심과 상대적 보리심을 명상할 때 먼저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예비적인 것들을 명상하고 사마타(고요) 명상으로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무른다. 그 상태에서 절대적 보리심에 대한 비파사나(통찰) 명상을 하고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무르기로 돌아온다. 자연스러운 상태의 관점에서 통렌(주고받기) 수행을 하고 그 수행을 끝내면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무르기로 돌아온다. 세 가지 독을 성찰하고 자신을 남과 바꾸기 수행을 하고 명상을 마친다. 명상의 중간에 시간이 되면 다른 경구를 성찰할 수 있다. 경구를 몇 번이고 거듭해서 자세히 살펴보며 그 의미와 주석을 검토한다. 명상할 때 확고히 자리 잡지 않으면 로종 경구들은 우리 존재 안에 깊이 뿌리내릴 수 없다.
로종의 가르침은 보살의 길과 연관된다. 자기 집착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물을 다르게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해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사고방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만큼 수행하면서 통렌 수행을 더 잘하도록 점진적으로 자신을 독려하면 정신적 지평이 넓어지고 보다 수용적이고 유연해진다. 로종 수행만 하면 안 되고 다른 불교 수행들과 함께함으로써 보완하는 것이 좋다.
로종 수행은 마음의 부정적 경향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새로운 습관을 들이고 점진적으로 부정적 경향을 극복하려는 길이다. 단지 번뇌에 대한 집착을 줄이면 번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기 전에 먼저 긍정적인 면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대승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다. 특히 다루기 힘든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직접 부딪치면 긍정적 결과보다는 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 그 대신 그 문제의 해독제 같은 것에 집중해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면 자신도 모른 새 골치 아픈 문제가 수월해진다.
출처: 티베트 마음수련법 로종 / 따렉 깝관 지음/ 켄 윌버 추천, 이창엽 옮김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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