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꿈의 본성
PART 2 꿈의 종류와 사용법
세 가지 유형의 꿈
꿈의 사용
▷ 꿈에서의 경험
▷ 지침과 수행법
▷ 해몽과 예언
▷ 꿈에서 전수되는 가르침
쫴 수행의 발견
수행의 두 종류
PART 2 꿈의 종류와 사용법
꿈 수행의 목표는 해탈이다. 우리는 꿈 수행의 의도를 꿈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의 삶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꿈의 사용을 아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는 꿈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것과 꿈속 경험으로부터 직접적인 유익을 얻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꿈을 사용한 치료법이 널리 퍼져 있으며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그들의 꿈에서 얻은 창의성에 도움을 받아 작업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티베트인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꿈에 의존한다. 이 장에서는 꿈의 사용법에 관하여 설명하겠다.
세 가지 유형의 꿈
비록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꿈 수행에는 진전에 따라 세 가지 유형의 꿈이 있다. 평범한 육도윤회의 꿈, 명료한 꿈, 청정한 빛의 꿈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두 가지 유형은 꿈을 일으키는 원인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고 두 꿈 모두 꿈꾸는 자가 꿈을 자각한 상태거나 자각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청정한 빛의 꿈에는 알아차림은 있으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은 없다. 청정한 빛의 꿈은 비이원적 인식에서 발생한다.
육도윤회의 꿈
우리가 꾸는 꿈의 대부분은 업의 흔적으로 인한 육도윤회의 꿈이다. 이런 꿈에서 발견되는 의미는 우리가 꿈에 투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꿈속에 본래 내재한 것이라기보다는 꿈꾸는 자에 의해 전가된 것이다. 깨어 있는 삶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투사된 것이라고 해서 깨어 있는 삶의 의미가 가볍지 않듯이, 이런 꿈의 의미도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책은 종이 위에 기호들이 쓰인 것뿐이지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꿈처럼 책의 의미도 해석의 대상이 된다. 어떤 사람은 책에서 발견한 의미로 인해 삶 자체가 바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책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거나 아니면 그런 재미마저도 못 느낄 수 있다. 책은 바뀌지 않았다. 독자 자신이 그 단어들에 투사한 의미를 스스로 읽어낼 뿐이다.
명료한 꿈
꿈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꿈은 보다 명확해지고 자세해지며 각각의 꿈이 더 많이 기억나게 된다. 이는 꿈의 상태로 더 큰 인식을 가져온 결과다. 평범한 꿈들 속에서 인식을 향상시키다 보면 명료한 꿈이라 불리는 두 번째 꿈이 나타난다. 이 꿈은 마음과 프라나가 균형 잡히고 꿈꾸는 자가 비개인적 현존에 거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했을 때 발생한다. 명료한 꿈은 육도윤회의 꿈과는 달리 마음이 업의 프라나에 의해 여기저기 쓸려 다니지 않으며 꿈꾸는 자가 안정되어 있다. 명료한 꿈 역기 이미지와 정보가 생겨나긴 하지만, 그것들이 개인적인 업의 흔적에 덜 기반해 있다. 그 대신 인습적인 자아의 수준 아래에 있는 의식으로부터 직접 구할 수 있는 지식을 드러낸다.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된 흰색 채널의 거친 프라나, 빨간 채널의 지혜의 프라나는 둘 다 이원적 경험의 에너지이자 업의 프라나지만 둘 중 하나는 더 순수하며 망상적인 면이 덜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료한 꿈은 육도윤회의 꿈보다 더 순수하고 망상적인 면이 덜하다. 육도윤회의 꿈을 꿈꾸는 자가 근본적 경험의 순수성 위에 투사한다. 반면 명료한 꿈은 꿈꾸는 자에게 주어진 것, 혹은 꿈꾸는 자에 의해 발견된 것처럼 보인다.
명료한 꿈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수행이 진전되고 안정될 때까지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이 꾸는 꿈은 모두 일상적 삶과 감정에 기반한 육도윤회의 꿈이다. 우리가 가르침이나 스승님에 대한 꿈을 꾸었더라도 그 꿈은 여전히 육도윤회의 꿈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우리가 스승의 지도를 받아 수행한다면 이런 것들에 대한 꿈을 꿀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르침에 전념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러나 전념 자체는 이원적인 것이므로 육도윤회의 세계에 속한다. 육도윤회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는데 수행과 가르침에 대한 완전한 전념은 해탈에 이르는 길이므로 좋은 것이다. 그리고 육도윤회의 꿈을 명료한 꿈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도 역시 좋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육도윤회의 꿈이 진정한 지침을 제공한다고 믿는 실수를 범한다면 꿈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종일 매달리느라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꿈이 더 영적이고 상위적인 근원에서 오는 메시지라고 믿는다면 개인적인 드라마에 빠져버릴 것이다. 이런 믿음들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꿈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무엇이 주목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의 일상 속 욕망, 두려움, 희망, 환상, 감정들의 표출일 뿐인지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청정한 빛의 꿈
꿈 수행의 깊이가 깊어지면 세 번째 종류의 꿈인 청정한 빛의 꿈을 경험하게 된다. 청정한 빛의 꿈은 중앙 채널의 원초적 프라나에서 생겨난다. 청정한 빛은 대개 잠 요가에 관한 가르침에서 언급되는 것으로서 꿈, 생각, 이미지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만약 우리가 마음의 본성에 거하여 꾸게 된다면 그것이 곧 청정한 빛의 꿈이다. 청정한 빛의 꿈은 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청정한 빛의 꿈을 꾸기 위해서는 수행자가 비이원적인 의식에 매우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더 탄트라에 관한 중요한 해설을 저술한 걀셴 미루 삼렉은 9년 동안 꾸준히 수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청정한 빛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청정한 빛의 꿈을 꾸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낮 동안 릭빠(완전한 각성)의 비이원적 현존을 지속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릭빠의 경험 속에서는 생각이 없으며 만약 생각이 떠오르면 우리는 이내 산란해져 릭빠를 잃게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릭빠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릭빠에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능력이 계발되면 생각은 조금도 릭빠를 방해하지 않은 채로 발생, 소멸한다. 이때 수행자는 비이원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제사 때 북과 종을 함께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종을 치면 북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북을 연주하면 종의 리듬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씩만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실력이 안정된 후에는 둘 모두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
청정한 빛의 꿈은 명료한 꿈과 구분한다. 명료한 꿈은 마음의 비교적 순수하고 깊은 면에서 생겨나며 긍정적 업의 흔적이 생성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이원성에서 일어나는 꿈이다. 청정한 빛의 꿈은 과거의 업의 흔적에서 생겨나는 것이긴 하지만, 이원론적 경험을 낳지는 않는다. 이때 수행자는 꿈의 주인공도 아니고 꿈과 분리된 관찰자도 아니며, 비이원적 릭빠와 전적으로 통합된 상태를 유지한다.
세 가지 꿈의 차이는 미묘해 보일 수 있다. 꿈의 모든 내용은 업의 흔적과 감정에 의해 형성된다. 육도윤회의 꿈은 개인적 업의 흔적과 감정에서 발생한다. 명료한 꿈은 집단적인 업의 흔적으로부터 떠오른 더 객관적인 지식을 포함한다. 이러한 지식은 의식이 개인적 업의 흔적에 얽히지 않았을 때 활용할 수 있다. 의식이 시공간 및 개인사에 의해 구속되지 않으면 실제 인물들을 만나거나 실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널리 도움이 될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청정한 빛의 꿈은 꿈의 내용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꿈꾸는 이의 주관이나 꿈속 에고가 없으면 즉 꿈이나 꿈의 내용과 이원적인 관계를 지닌 어떠한 자아도 없으면 그것은 청정한 빛의 꿈이다. 청정한 빛의 꿈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활동은 수행자가 청정한 빛에 안정적으로 거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평범한(육도윤회의) 꿈
(개인적인 업의 흔적에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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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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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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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꿈
(집단적인 업의 흔적에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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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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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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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빛의 꿈
(비이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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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함(주체와 객체의 이원성을 넘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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