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혼의 쉼터

나는 시골쥐여!!

by 마하연 2023. 1. 13.

서울쥐가 시골쥐를 만나려고 시골로 왔다.

시골쥐가 먹는 음식이 초라한 것을 가엾게 여긴 서울쥐가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으니 실컷 먹여주겠다”면서 시골쥐를 서울로 초대하여 음식이 풍부한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는 쌓여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마음대로 먹으라 하였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려 할 때마다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번번이 도망가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만 곯게 된 시골쥐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마음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부터 차곡차곡 쌓여지고 재여져온 기억의 질료들이 생각과 감정과 오감으로 나타난 것인데 이 마음 즉, 기억이란 것이 대부분 부모 형제 등의 선천적 유전적인 접촉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인위적 일방적으로 주입된 것이라, 우리는 의식 확장을 위해 배움이 필요하고 그러기에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스승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과경에 보면, 부부의 연이 7천겁이고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8천겁인데 반해 사제의 연을 만萬 겁에 놓고 있습니다. 육신은 부모가 낳아 주지만 마음이 새로 눈을 뜨게 하는 데에는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옛 성현들은 "불佛연이 혈血연보다 중하고 스승은 정신, 영혼의 부모다"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심심찮게 들어오는 문의 중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들이 종종 내 영혼을 심란하게 한다.

"스님 제 원찰이 서울 ○사인데요. 재작년에 들삼재 작년에 눌 삼재 기도를 해왔는데요, 마하연에 다니고부터는 스님께서 그런 걸 안 하시니 심적으로 불안하고 찜찜해요. 어쩌지요?" 

"그래요 정 그러시면 제가 풀어드리지요 "

"그럼 스님, 입던 속옷이나 손톱 발톱 같은 것 안 갖구 와도 되나요ㅜ"

유구무언입니다. 아무리 현상계가 물질화 물질 만능화된 시점이라지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한민국의 사찰 중에서도 훌륭한 스승님들이 모여 계시고 대중법문도 이름난 대본찰에서조차 삼재 장사에 부적 장사에 무속인 방편 답습까지 자행하는 우리의 모습에 삼세제불께서는 머라 하실까? 과연 먹물 옷 입는 나부터 스님 소리 듣기 부끄럽지 않은가?

고기를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한다. 삼재 장사해서 돈맛 들린 중들이 부적 장사로 영역을 넓히고 입춘 장사에, 해마다 정초 되면 교통사고 방지 차량 기도에 열을 올리더니 인자는 동안거 하안거 기도한다고 아지메 할매들 삥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에 새삼 나는 느낀다. 스승 복이 왜 부모형제 복보다 우선하는지를 .....

안타까움이 가중되는 것은 순수한 보살들조차도 이런 불량스러움과 전도된 억지에 순응하고 당연시하며 심지어는 앞장서 버린다는 팩트다. 

이 시골쥐가 서울살이를 하려니 자주 들려오는 소리가 "스님.. 서울 절에서는 거요.. 서울에서는요.." 하는 말이다.

처음으로 명상 법회를 마치고 나니 좋게 말하면 건의랄까? 아니 서울 절 따라가자고 조르는 말들이 나온다. "스님, 서울 절에서는 이 법회 참가비 이만 원씩 받으셔야 하구요... 천수경 치신 후 정근 꼭 넣으셔야 해요 ..." 

뜨악 한 제가 "아니 그게 먼 말씀입니까?" 반문하니, "아이고 스님 정근을 해야 보살들이 죽 나와서 불전함에 기도비 넣지요" 합니다. 정근을 안 하면 그냥 가는 보살들도 있을 테고 어쩌고 하시는데... 황당합니다.

심장을 칼로 에리는 듯하고 일순간 내가 과연 스승일까? 자괴감이 내 심장을 조각조각 도려옵니다.

삶이란 우주의 힘이 우주의 에너지가 인생이란 명제로 도식화된 것이다. 각자 영혼(불자니까 의식이라 해두자)의 차원에 따라 각기 공부하는 체(차원)가 다르고 그 체에 다른 작용법을 배우는 기관이 우리 남섬부주 즉 지구별입니다. 이 지구별에 몸받아 온 우리를 생명체라 하는데 생명이란 生(살아라)는 命(명령)을 우주로부터 근원으로부터 받고 내려온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조합체인데 마음 자체가 순수한 영혼이라면 몸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몸은 우리말의 모으다 모임의 준말로 다시 말하면, 내 몸은 아침에 먹은 온갖 채소들 상추 시금치 콩나물 등이나 점심에 먹은 순두부찌개나 저녁에 들이킨 소주와 삼겹살 등등이 얽혀있는 얼개에 불과한 것입니다. 밥과 반찬이 한시적으로 유한하게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면 집은 무얼까요? 집이란 흙과 돌과 나무와 온갖 건축자재가 모여있는 유한한 공간을 말하지요. 어느 민족도 몸과 집을 합친 몸집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오직 우리만 몸집이란 말을 쓰는데 여기서 집은 우주 宇宙를 뜻합니다.

이 우주의 몸을 갖춘 영체인 인간이, 인간으로서 질적 의식 확장은 뒤로하고 제 한 몸뚱어리만 가꾸고 제배만 불리는 자들이 스승의 탈을 쓰고 있고 스승 찾아 구도행 중인 선남선녀들을 지옥 유황불로 인도하는 것을 두고만 보자니 안타까움이...

이렇게 제 밥그릇만 찾는 자들을 밥보라 합니다. 여기서 보는, 울보 꽤보 놀보 할 때 드러나듯이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밥보에서 ㅂ탈락 현상이 일어나 바보가 되는데 이 뜻은 굳이 설명 안 해도 잘 아실 겁니다. 

안개 같은 무명 속에서 헤매도는 중생들에게 바보 면하게 해주려고 기억의 잘못된 편린들을 클릭, 수정해 주는 사람을 스승이라 합니다.

시골쥐가 서울에서의 체험을 통해, 초라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애써 증득한 진리를 설파하려고 애를 씁니다. 불건강하지만 화려하고 불건전하지만 맵시 나는 허영적 기생적 삶을 반조시켜보려는 디딤돌을 이제 겨우 하나 놨는데 물살도 세고 거친 탁류가 휘몰아칩니다.

 

일만겁생 인연, 세상에 참 귀한 고귀한 인연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집은 곧 지수화풍 사대로 화하지만 눈이 뜨고 지혜가 열리는 스승의 가르침은 필설이 무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올바른 불연이 혈연보다 소중하고 스승은 정신 영혼의 부모'입니다.

과거세 인연은 대략 둘로 나뉘는데, 첫째는 은인이 되어 서로 보답하기 위한 인연으로 호연이거나, 둘째는 빚쟁이가 되어 서로 빚 받으러 온 악연입니다. 

인연은 노력의 결과입니다. 존경과 자비심으로 인한 인연이 되고 불화와 증오심으로 악연을 만드는 것은 다 내가 현재 짓는 행위에 대한 소산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회보다 참괴입니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란 참회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못을 반성하고 깨우친 지혜로 다른 이를 인도하는 참괴는 실로 호연을 생장시키는 코잘체가 될 것입니다.

은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빚진 악연은 지금 이 순간부터 올바른 수행과 올바른 스승을 찾아서 청산해야 합니다. 다음 생까지 질질 끌고 가서 고통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생에 인연의 사슬고리를 다 끊어야겠다는 각오로 눈 단디 떠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허황된 홀로그램에 천착되어 있는 도시 쥐가 아닌지 자성하는 순간 눈밝은 스승이 짜안 ~~ 하고 현현하시게 됩니다.

한시라도 나와 남을 가리지 않고 존재해보는 것이 명상입니다. 나와 남을 구별 없이 나에 집중하다 보면 참나가 드러납니다. 내가 드러나는 순간 내 생각은 지혜가 자비가 되어 밝은 눈이 떠집니다.

참괴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15년 1월 6일

 

 

승묵스님 글모음 길라잡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