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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쉼터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어요

by 마하연 2023. 1. 10.

양력으로 임진년 일월 일일 부로 삼십만 배 서원을 세웠습니다. 작년 12월 중순부터 천배 이천배 하며 몸을 만들어 준비하여 왔지요. 말이 삼천배지 그리 녹녹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어요. 특히나 서원이 크고 기도 원력을 높이 세울수록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마장도 큰 법이지요. 

이십여 성상 바랑 메고 운수납자로 부평초로 한 세상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어요. 몇 해 전 칠십 노인네 시님이 월급쟁이로 절밥 얻어먹고 연명하시는 걸 보고 아~ 저게 내 모습일지 모른다. 저 노인네는 덩치라도 크고 완력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살아가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늙어 추해지모 오갈데음씨 뒷방에 나뒹구는 때 묻은 베개 자루 신세가 되겠구나... 

까막산 아래 초가삼간 얻어 둥지를 삼아 독립(?)을 시작했어요. 조금씩 모아 시골 농가를 얻어 토굴을 세웠지요. 토굴살이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신도두 늘고 살림도 늘어 다만 열명이라도 마주 보며 법회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곳 수덕사로 이전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절자릴 구하려니 하는 수없이 융통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엔 그게 돈이라는 게 그리 내 인생에 태클을 거는 대마장이 될 줄 몰랐어요. 그러니께 중생이고 미련한 불목하니겠지요... 

십만 배쯤 해 나가니 실실 입질이 옵니다. 왼쪽 발등이 퉁퉁 붓고 힘줄이 당겨 산신각에 오르질 못할 정도입니다. 한 이천 배쯤 하다가 보면 좀씩 풀리고 절 마칠 때쯤 되면 희한하게 안 아프고를 반복하는 겁니다. 가만히 관조해 보니 전생에 스님살이 할 때 산에 나무하러 온 사람들 두들겨 패서 쫓아낸 업보인지라 삼일간 참회 기도하니 씻은 듯 사라집니다. 

이십여 년간 따라다니던 만성비염이 도집니다. 매일 한 알씩 먹던 지르텍도 과감히 던져버리고 달고 살던 정로환도 치웠습니다. 콧물이 고장 난 수도 꼬렝이 맹키로 질질 새 나와 인중 있는 데가 벌겋게 시려옵니다. 시도 때도 음씨 설사가 나와도 그냥 맡기고 내비두고 기도하며 순응하기로.. 

더욱이 제가 안고 가는 백여 명의 신도님들 업장도 아듬고 가야 하니 하루도 바람 잘날 음찌요. 타고난 운명이고 팔자가 남과 내 기도하여 먹고살아야 할 팔자라면 굳이 따지지 말고 그러 하자. 그게 여여함이요 순행이리라.. 

내 몸에 아파야만 했던 시절 인연이 조금씩 사라지자 이번엔 차츰 주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마장이 스며듭니다. 무리해서 억지 춘향으로 마련한 이 거처에 오느라 빌린 돈이 저를 옥죄어 옵니다. 온갖 말들이 날개를 달고 되돌아와 내 가슴을 후빕니다. 아무리 군자라 할지라도 직격탄엔 잠시라도 낮은 포복으로 가만히 있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어요. 

이십만 배 넘어서니 인자는 전생에 탈렌트 시님 하면서 방탕한 생활했던 업장들이 밀려옵니다. 소문은 제대로 된 시나리오까지 갖추고 저를 갈기갈기 찢어발깁니다. 그저 그러려니 무심코 내비두니 그렇다고 적극 대응하라고 성화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우주의 법칙대로 정리가 되는 게 진리입니다. 하늘의 계산법은 한 치의 오차두 음써요. 인연법은 아는 즉시 즉신성불입니다. 미련한 불목 하니가 어찌 인연을 알고 거들먹거리리오. 시절 인연 다하면 이뻤던 사람도 미워지고 본드처럼 붙어있던 연인들도 바이바이입니다. 

돼지가 처음 울면 배고픈가 시퍼 먹을 걸 주고 두 번째 울면 움막이 지저분한가 시퍼 청소를 해주고 세 번째 울어대면 이놈의 돼지가 왜 이리 욕심이 많냐 하며 두들겨 팬다는 말이 있어요.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마장에 일일이 대응하면 세 번째 돼지 꼴 나요. 기도 원력도 욕심이에요. 원력을 너무 높이 세우면 자신에게 돌아와 해를 끼칩니다. 자기 기운에 자기가 당합니다. 

자비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를 베풀면 당장은 손해 보는 듯 하지만 결국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이번 기도는 욕심 내려 노라는 법문을 하달받음으로 대자비를 시혜받았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삼십만 배에 다다르자 이젠 인연이 다 정리가 돼갑니다. 수년간 따르던 도반이 까막산에 도라지 캐러 간다 하며 시퍼런 날 선 비수를 내 가슴에 던져놓고 훠이훠이 파랑새를 쫓아 달음질칩니다. 멘숭 멘숭 데면 데면 하고 뒷담화나 날리던 분이 인자는 다가오기도 합니다. 세상사 돌고 돕니다.

그러고 보니 비염약 음씨 한겨울을 지냈고요 정로환 병도 안굴러 댕겨요. 기도 빨을 받았니 안 받았니 해도 저도 명훈을 분명히 받긴 받았나 봐요. 

뭐든 하날 얻으려면 그만큼 나가야 되나 봅니다. 마음 아픈 인연 짠한 인연에 가슴 아파야 하기보단 어둠이라는 건 결국은 빛에 의해 물러나고 개동 참외 밭에는 개똥참외 밖에 안 나옴을... 

부처님을 섬기고 일체중생을 섬기려는 마음에 모든 정성이 담겨야 함을.. 부처님께 올리는 만사 공양은 끝없는 정성으로 올려져야 함을 배웁니다... 

원력은 세우되 허심탄회해야 합니다. 순간마다 공부 찬스요 경계마다 공부거리라 합니다. 이번 공부 참 지독히 처절히 다가옵니다. 중으로서 당당하게 살려면 끝까지 외로워야 한다. 

현실은 매 순간 경계로 다가오지만 이는 고통이 아니라 불편함을 약으로 쓰라는 법문이기에 오늘 저는 기도 회향을 모두에게 바칩니다. 순간마다 공부 찬스요, 경계마다 공부거리입니다. 백일 간 공부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늦게 동참하신 분들 마치실 때까지 옆에서 미력을 보태겠습니다. 모든 분께 원만 성취하심을 경하드립니다. 

2012년 4월 10일

 

관세음보살 승묵 합장

 

승묵스님 글모음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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