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7일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하늘과 인간의 가장 높고 귀한 스승이시며 모든 중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고통에 허덕이는 우리네 중생들을 열반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거룩하고 성스럽고 뜻깊은 날입니다.
부처님의 탄신 설화를 통해 부처님께서 하늘나라의 영화도 버리고 탐욕에 가득 찬 땅, 시기와 질투와 전쟁과 질병이 가득한 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신 거룩한 뜻을 새겨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탄생설화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보요경普曜經에는
<태자가 땅에 떨어지자 홀연히 몸이 보배 연꽃 위에 있었으며 일곱 발자국을 옮기면서 "내가 장차 천상이나 인간을 제도할 도사가 되어 나고죽음의 괴로움을 끊고 모든 중생을 길이 안락하게 하리라"라고 선언하시니 이때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이 향수를 뿌렸고 아홉 용이 향수를 뿜어 태자의 몸을 씻겨드렸다>라고 했습니다.
정반왕은 크게 기뻐하며 태자의 이름을 지덕 높은 바라문에게 부탁하였는데 그 이름은 싯다르타로서 ‘모든 것이 다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중음계에 머무르다 연기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세상에 올 때는 분명 목표와 목적이 있었을 텐데 오탁악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고 듣고 맛봄으로 인하여 본래 소기의 목적은 다 잊어버리고 얼떨결에 태어난 사람들이 되어 우왕좌왕 한세상 낭비하다가 후회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태어날 장소와 시기 그리고 부모님까지 스스로 선택하시고 태어남은 물론 이 세상에 오신 뚜렷한 목적을 다 기억하고 실천하셨습니다.
첫째로 부처님은 중생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광명 같은 밝은 지혜의 등불을 온누리에 밝혀 거짓과 사악함에 속아사는 어리석은 삶을 버리고 진실한 삶으로 인솔하기 위해 지혜의 등불을 환하게 비추려고 오신 겁니다.
사실 부처님이 나투시기 이전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어떠한 신이 창조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인도인들은 브라만이라는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기독교인들은 여호와라는 하느님이 자기들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 그 예입니다.
부처님 탄생게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모든 생명체는 그 누구의 피조물이 아닌 근본에 있어서 절대 평등함을 깨우치신 대평등 선언이며 모든 존재는 노력에 의해서 부처도 될 수 있고 중생에 머물 수도 있다는 차별상도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 닮아가려고 수행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게송은 익히 알면서도 게송 후반부 '삼계개고아당안지'는 잘 거론하지 않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 天上天下唯我獨尊三界皆苦我當安之>가 탄생게입니다.
"三界皆苦我當安之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 빠져 허덕이니 내가 편안케 하리라"라는 뜻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일대사인연 一大事因緣, 즉 이 세상에 오신 인연을 밝히신 것입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업에 이끌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업력에 이끌려 윤회하는 육도 중생을 위해 나투신 일대사인연입니다.
둘째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 말법시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천지창조를 하시고 뭇 중생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절대자나 신으로 이 땅에 나투신 게 아니라 중생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가르쳐주러 온 것이지 행복 자체를 퍼주러 오신 게 아닙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고 계시지만 사람들이 이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불행의 길을 걷고 있기에 부모가 자식의 불행을 염려하듯 항상 중생을 위해 눈물짓고 계시는 이가 부처님입니다.
심성 착하고 근면 성실하며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사는 개구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연못에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지혜로운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구리들은 대표단을 구성해서 제우스 신에게 보내 자기들이 왕을 얻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탄원을 했습니다. 개구리들의 뜻을 가상하게 생각한 제우스 신은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연못 위에 떨어뜨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통나무가 지금부터 너희들의 통치자다. 그러니 저분을 존경하면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
처음에는 개구리들도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왕 통나무가 햇볕을 쬘 수 있는 훌륭한 장소를 제공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많은 애벌레와 딱정벌레, 그리고 지렁이 따위들이 통나무 주변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먹이까지 풍성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통나무 대왕이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한마디 하지 않자, 젊은 개구리들은 슬슬 통나무를 비웃고 무례를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버릇없는 태도에도 통나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개구리들은 자기네가 죄를 저질렀는데도 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 불안감은 오히려 통나무 대왕에게 더욱 짜증을 부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개구리 대표단은 다시 한번 제우스 신에게 가 자기들의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자기가 내린 판정에 대해 궁시렁거리는 개구리들의 불평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제우스 신은 이에 대한 응징으로 커다란 물뱀 한 마리를 연못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엄청난 먹성을 자랑하는 대왕 물뱀은 닥치는 대로 개구리를 잡아 삼시 세끼를 완전히 개구리로만 때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개구리들은 얼마 안 있어서 물뱀 대왕한테 깡그리 소탕되었지만, 모두들 행복하게 잘 죽어갔더랍니다.
우리가 등불을 밝히고 본성을 깨우치려 수행정진하는 까닭은 무시겁래로 내려온 무명장야無明長夜의 어둠을 제거하고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광명을 회복하여 다 같이 슬기로운 삶을 살기 위한 뜻입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시대는 비록 말법시대라고는 하나 모든 중생이 제각각 조금만 지혜를 발휘하고 안목을 높이면 누구나가 제우스가 되어 크고 작은 고관대작은 물론 왕마저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는 내 잘못을 인정하고 참괴하는 것이 지혜이고 자비광명의 길로 드는 문입니다.
그래서 무명과 어리석음으로 세뇌된 생각을 우리들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부처님 같은 반야 광명을 일구어서 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특히 흉악하고 혼란합니다. 세상이 이처럼 험악하고 음험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음흉하고 혼란한 자들에 세뇌되어 밝은 광명 지혜가 들어올 틈이 없어서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리 된 것은 우리가 욕심을 내어서 온갖 욕심을 일으켜서 마음의 근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모두 내가 제우스의 권한이 있음을 망각하고 노예근성만 발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어두운 각자의 마음에 자비 광명의 지혜의 등불을 밝힘으로써 먼저 자기 자신을 안정시키고 한발 나아가서는 가정과 국가가 편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 스스로가 실현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이가 다 같이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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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묵스님 글모음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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