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 존재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참으로 좋은 세상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노부부 두 분이 절 찾아오셨어요. 울절 여기저기를 살펴보시고... 합장도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얼굴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첫마디가 스님 혼자 사세요... 스님 절이세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이분들이 속내를 내비칩니다.
스님 울 아들... 내 사업이 요즘 어쩌고 합니다. 스님 소문엔 스님이 빙의된 사람도 많이 구제해 주고 사업도 잘 일으켜 주신다던데요... 말끝을 흐립니다.
대게 이런 분들은 힘줄 깨나 쓰고 돈줄 깨나 있지요. 차도 대단하고 옷도 대단하고 명함도 으리까리한 게 공통점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다 제가 한마디 합니다.
처사님 처사님의 할아버지가 할머니 두 분을 거느리셨지요.. 그리고 중풍으로 반신불수로 돌아가시지 않으셨나요?
아이고 스님 그걸 어찌 아십니까? 스님 눈에 보이십니까? 그제서야 한 발짝 다가앉으면서 자세를 바로 하고 선한 모습으로...
들어올 때 이 절 같지도 않은 곳에.. 삐싹 마르고 쪼그만 중이 알면 얼마나 알꼬 하며 외제차 키를 만지던 모습은 꽁지도 없습니다.
이분들이 지금 하시는 업은 말 안 해도 짐작이 갑니다. 스님 이번 건 하나 제대로 되모 삐까뻔쩍한 절 하나 지어준다는, 외제차도 굴리게 해 준다는..
흔히 말하는 법문을 하려 하나 씨도 안 먹히고 오직 자기 안위 밖엔 대화가 되질 않는 건 알지만 그래도 혹 저런 분들이 제도되면 그래도 긍휼한 이들 하나라도 어찌 구제가 안될까 하는 심정이지요...
아직은 제가 도가 부족함을 절감하는 순간이 오고야 맙니다. 차라리 제가 설득돼서 웃고 마는 게 편치요.
스님이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자기네 집 조상 천도재 하자는 걸 요즘 백일기도 중이라는 구실로 다음을 기약하고 보냈습니다. 이분들 가는 길에 그래도 맘자리 바꿔서 선량한 마음으로 저녁기도에 임하지만 마음이 편칠 않네요.

몇 해 전입니다.
진짜로 성실하고 시쳇말로 법이 없어도 살 분이 너무나도 안 풀리고 지체와 장애가 많은 고로 저와 상담 끝에 정성을 마련하여 천도재를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스님이 천도재를 받으면 그날부로 지장보살님께 이러이러한 재가 불자가 몇 월 몇 일 날을 잡아 정성을 올리오니 이분들 선망 조상님들 모두 살펴주시고 누지고 처진 조상님들은 좋은 곳에 천거하여 제 갈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며 기도 축원을 합니다.
그러면 스님은 재가 불자님 댁에 선망 조상님들을 살펴서 어찌 된 연고와 사연으로 돌아가셨으며 무엇에 한이 맺혀서 중음신을 못 면하시는가 살피고 그 영가님 들음의 해원(원을 풀어줌)을 위해 주력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꽃을 좋아하셨던 분께는 꽃 공양을 올리면 되는 거이고, 약밥을 좋아하셨던 분께는 약밥을 올리면 되는 셈이지요. 위암이나 대장암 걸려 가신 영가한테 진수성찬 차려놓고 염불 한다고 천도재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천도재 날찌는 다가오고 기도를 아무리 해도 그 보살님 댁 양친 외엔 아무 영가도 오지 않고 기도가 되질 않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저는 제 기도 정성이 부족한가 해서 걱정이 되기에 배전의 노력을 해도 마찬가지더군요.
삼일이 지나도 재가 성립이 안 되길래 보살님을 불러 사연을 물었더니.. 본인도 알 턱이 없겠지요. 해서 고민 끝에 그 집안에 나이 많으신 어른을 수소문해서 제가 직접 찾아가 뵙고 가문의 내력을 들어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더군요.
원래는 이름 없는 노비 출신의 가문인데 어찌어찌하여 돈을 모으게 돼서 양반 신분증을 사서 지금의 성씨가 됐다는 겁니다... 하기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의 삼사십 프로밖에 성이 없었다네요. 거의가 천민이었던 게지요.
그러니까 이분들 조상님들은 돈으로 성을 샀지만 영계에선 나름의 질서가 있는 고로 그 가문에서 받아주질 않으니 나름의 고통을 받고 있었던 터이고요. 후손들은 후손대로 제사도 지내고 정성을 들였지만 이 씨 집 가서 김 씨를 찾은 격이 되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3대조 할아버지가 자기 조상들께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욕심에 성을 갈고 족보를 샀으니 조상들께서 억장이 무너졌겠지요. 그런 연고로 후손들은 영문도 모르고 역성을 했으니... 무슨 조상덕이 있었겠습니까?
원인을 알고 기도를 드리니 그제서야 한 맺힌 분들이 한두 분씩 오시고 서로 용서하시고 포용하시니...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그런데 재를 받아보면 이런 집 상당히 많아요..
천도재란 이런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을 풀어드리는 것입니다. 설움에 복받쳐 때그쟁일 쓰며 고집 피우던 애기가 엄마가 달래며 내민 사탕 하나에 빙긋 웃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때로는 식혜 한 잔에 국화꽃 한 송이에 영가 옷 한 벌에 맘을 풀고 해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스 활명수 한 병에 천도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장경에도 그러지요. 천도재의 공덕은 영가는 삼십 프로의 공덕을 입고 나머지 칠십 프로는 후손의 공덕으로 돌아간다고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보시행보다 더 좋은 천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욕심이나 차리는 천도재는 성립조차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보살님은 자기는 평생 보시하고 살았다 합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시댁 식구들 다 건사하고 시동생들 대학 보내고 짝 찾아 주고 공장 식구들 밥 해주고 빨래해 주고 시부모 기저귀 수발까지 보시 안 하고 산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오나 그것은 보시라기보다는 희생이고 본인의 업 닦음입니다. 자기 가족을 위한 의무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요. 그러기에 본인의 업을 닦은 결과로 우리 후손들이 이만큼이라도 사는 걸 겁니다.
정성으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선망 조상님께 감사하는 맘을 먹는 게 더 좋은 약입니다. 아무리 가진 자라도 필터링이 안되고 복전이 다 되면 비참해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흔히들 그러지요. 저 집 사람들은 별 노력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남들이 알아서 도와주고 잘되고 술술 풀린다고 하면서... 우린 그럽니다 무척 잘 되는 집이라고...
그래요. 무척 할 때 척이란 慽 剔 을 말합니다. 근심 척, 원수 척, 바를 척 자를 이름입니다. 한마디로 보시행 보살행으로 필터링이 돼서 정화가 돼서 원수도 없고 근심도 없음을 이름입니다.
늘 묵묵히 내 생업에 최선으로 성실히 사시는 게 가장 좋은 필터링입니다. 오늘도 여여하게 말이지요.
천도재를 한다고 없던 복이 굴러오는 게 절대로 아님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만 앞을 막고 있는 장애물 하나 건져내는 것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본인의 실행 여부에 있는 것임을 늘 알아차려야 합니다.
진언 수행이든 참선이든 그저 묵묵히 해야 합니다. 배부르게 아침 먹었더라도 또 점심, 저녁을 먹듯이 말입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2011년 10월 13일
승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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