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여물어 가는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으로 향합니다. 여느 해도 늘 그렇지만 이맘때쯤 되면 아쉬움도 생기고 벌써 세월이 하며 조급함에 서두르는 마음마저 이는 때입니다. 요즘 들어 소식 뜸하던 보살님들의 연락이 잦아지고 여러 채널을 경유해서 답답함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제법 느는 걸 보니 연말이 돼가나 봅니다.
늘 언제나 그러하듯이 부처님 말씀은 2500년 전이나 로봇 인공지능 운운하는 작금이나 한결같습니다. 잘 살고 싶으면 첫째 보시하고 공양 올리고, 둘째 공덕 짓고 살면 그만이라고 ···
세상에 지주머니돈 아깝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세상 어느 천지에 제 것 제재산 제물건 아깝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보시를 우리 말로는 베풂이라 합니다. 요즘에는 나눔 기부라는 말도 많이 쓰고요. 이는 많이 가진 자가 조금 떼어 주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에서는 부주상 혹은 무주상 보시라 하여 강조를 합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생색내지 않고 주는 것, 다시 말하면 티 내지 않고 주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그러십니다.
"아난다여,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백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도덕적인 일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십만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억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갚음이 기대된다. 하물며 흐름에 든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누군가가 보시 공덕을 논하면서 돈 얼마를 보시하면 그 백배 천 배의 과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부처님을 크게 능욕하는 것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갚음의 과보는 현생에서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배의 공덕이 기대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백 번의 생을 거치면서 ① 수명을 타고나며 ②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며 ③ 행복한 삶을 살고 ④ 힘과 지혜를 갖추어 나며 ⑤ 혼란을 격지 않고 산다 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돈 몇 푼을 부처님께 쥐여주며 당장 천배 백배 이익을 기대하고 사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보시는 결국 자신에게 베푼다는 것을 말합니다. 보시란 남을 통해 내게로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기대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이익에 대한 것입니다. 수행자들에게 보시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베푼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이익으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이여, 그는 수명을 베풀고 용모를 베풀고 행복을 베풀고 기력을 베풀고 총명을 베푼다"라고 하셨다.
보시는 결국 자신에게 베푸는 행위이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에게 베푸는 행위를 우리는 '회향'이라 부른다. 가장 일반적이지만 궁극적 회향 행위의 의미는 결국 선망 조상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모든 공덕을 삼악도에서 태어난 조상들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일체 모든 존재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주변 16개국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 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아귀들은 과거 부처님 당시 밤비사라왕의 친척들이었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올릴 공양음식을 집사들과 친척들이 먼저 먹어 치웠고 사악하고 나쁜 친척들은 아이들이 보채자 승가에 올릴 음식들을 아이들과 모두 나누어 먹었다. 이 사악한 친척들은 모두 만 명이나 되었고 그들은 스님들께 올릴 음식을 먹은 죄로 모두 죽어서 아귀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 연후로 아귀들은 스님들이 발우 공양하고 남은 물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출현하시자 밤비사라왕은 첫째날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공양을 드리고 법문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에 들었다. 그날 밤 빔비사라 왕은 아귀들이 밤새 소란스럽게 하고 끔찍스레 소리를 질러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서운 형상에 시달렸다.
이에 왕은 부처님께 연유를 여쭙게 되고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구십이다겁전에 이 아귀들은 그대의 친척들이었다. 그때 그들은 승가에 올려야 할 음식을 먹어치운 죄로 아귀로 태어났다. 그들은 대왕이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회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이 어젯밤 그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운 이유다. 대왕께서는 공양을 올렸지만 그들은 그 복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왕은 다시 공양을 올렸다. '오늘 올린 이 공양이 나의 옛 친척인 아귀들에게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그가 보시 공덕을 친척 아귀들에게 회향했을 때 아귀들 앞에 천상의 음식과 감로수가 나타났다. 아귀들은 음식과 물을 먹고 건강한 외모와 다섯 감각을 완전히 회복했다.
아귀들은 건강한 외모를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벌거벗은 몸으로 나타났다. 아귀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나타난 것은 승가에 가사를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일러 주셨다.
다음날 왕은 승가에 가사를 보시하고 그 공덕을 아귀들에게 회향한다. "이 가사의 보시를 제 친척인 아귀들에게 회향합니다." 이제 아귀들은 아귀의 형상을 벗고 천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부처님은 신통으로 왕의 친척들이 행복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천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귀들은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공덕이 무량 광대한 것을 알고서 공덕 회향을 기대한 것입니다.
회향은 회자향타廻自向他의 준말입니다. 자신이 닦은 선근 공덕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는 말입니다.
쿳다까니까야 쿳다끼빠따 에 실려있는 『담장 밖의 경』을 소개합니다.
1. 담장 밖의 거리 모퉁이에 서 있으면서 가신 친지들이 자기 집을 찾아와서 문기둥에 서 있나이다.
2. 여러 가지 음식과 많은 음식을 차렸으나 뭇 삶들의 업으로 인해 아무도 님들을 알아채지 못하나이다.
3. 연민에 가득 차서 가신 친지들에게 제철의 정갈하고 훌륭하고 알맞은 음식과 음료를 헌공하오니
4. 가신 친지들을 위한 것이니 친지들께서는 행복하소서. 여기에 모여 친지의 가신 님들도 함께 했으니 풍요로운 음식의 성찬에 진실로 기뻐하소서.
5. 우리가 얻었으니 우리의 친지들은 오래 살리라. 우리에게 헌공했으니 시주에게 과보가 없지 않으리.
6. 가신 님들이 사는 곳 거기에는 농사도 없고 목축도 없고 장사도 없고 황금의 거래도 없이 보시받은 것으로 연명하나니
7.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계곡으로 흐르듯 이처럼 참으로 보시가 이루어졌으니 가신 님들을 위해 유익한 것이니이다.
8. 넘치는 강물이 바다를 채우듯 이처럼 참으로 보시가 이루어졌으니 가신 님들을 위해 유익한 것이니이다.
9. '나에게 베풀었다. 나에게 선행을 했다. 그들은 나의 친지, 친구, 그리고 동료였다'라고 예전의 유익한 기억을 새기며 가신 님들에게 헌공해야 하느니라.
10. 이처럼 친지들이 서 있는데 울거나 슬퍼하거나 달리 비탄에 잠기는 것은 헛되이 가신 님들을 위하는 것이 아닐지니라.
11. 그대가 바친 이 헌공은 참모임에 의해 잘 보존되었으니 오랜 세월 그것이 축복한다면 반드시 그들에게 유익한 것일지니라.
12. 친지들에 대한 의무가 실현되었고 가신 님들을 위한 훌륭한 헌공이 이루어지니 수행승들에게 크나큰 힘이 부여되었고 그대들에 의해서 적지 않은 공덕이 생겨났느니라.
- 『담장 밖의 경』 전재성 님 역 참조
이 경을 보면 제사의 당위성이 강조된다.
6번 게송 중 '거기에는 농사도 없고 목축도 없고 장사도 없고 황금의 거래도 없이... 오직 보시 받은 것으로 연명하나니...'라고 하였듯이 굶주린 아귀 조상들에게 음식 공양 회향을 설하고 있다.
굶주린 아귀는 부모 영가일 수도 있고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무량겁의 윤회 속에서 어느 생엔가의 나의 부모 친척일 수도 있음이다. 그래서 9번 게송에서는 "그들은 나의 친구, 친지 그리고 동료였다"라고...
샘물은 퍼내야 다시 고인다. 아깝다고 놔두고 아끼면 썩어서 막히게 된다. 보시 역시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는 공덕으로 화현할 뿐이다.
보시의 공덕은 형언할 수 없지만 보시하는 사람은 품성이 올바르고 품행이 공손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남을 시키지 말고 반드시 직접 해야 한다. 쓰다가 남은 것이나 버려진 것 주워서 하면 안 되고 티를 내서도 안된다. 흔히들 절에 가서 봉사한다고 떠들고 다니고 심지어는 다른 이 불편하게 상을 내고 칭찬받을 때까지 자랑질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공양드려서 공덕을 지으면 반드시 회향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공덕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공덕은 지은 대로 자신에게 베풂이 있게 되어 이익이 있지만 이것을 회자향타하게 되면 다른 존재에게 복덕이 되어 아귀를 면하고 지옥고를 면하게 되는 에너지가 되기에 부처님께서는 보시 등 모든 공덕은 반드시 회향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시 공덕만큼 저축성 강한 상품이 없습니다. 이자는 물론 복리에 복복리로 꼬박꼬박 쌓입니다.
재보시도 있고 무외시도 있고 여러 보시가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법보시만큼 수승한 보시는 없습니다. 하물며 동물에게 보시해도 백배의 갚음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미래의 부처 종자들에게 옳게 살아가는 방법, 지혜와 덕상을 공부하는 방법인 부처님 법을 전하는 법보시야 말해 무엇하리오.
불법을 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금생은 물론 세세 생생의 윤회마저 벗는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에 법보시만큼 수승한 보시는 없는 것입니다.
9월 초하루가 다가옵니다.
10월 20일 금요일 이번 초하루에는 삼악도 특히 아귀계에서 고통받고 계신 선망 조상들을 위한 [담장 밖의 경]을 법문토록 하겠습니다. 수희 동참하셔서 담장 안으로 오시지 못하는 나의 옛 동료, 친지, 가족들을 성스러운 마하연 법당으로 인도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마하반야 바라밀 무설 승묵 합장
2017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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